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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학 DB

전북학연구

< ISSN 2713-5772 >

『전북학연구』는 복합학을 지향하는 학술지입니다. 전북과 관련 있는 다양한 주제가 연구되고 논의되어 전북학 연구의 새로운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참여바랍니다.

전북학연구, Vol.3 (2021)
pp.1~41

- 木山 李基敬 『東儒經說』의 書誌的 考察 -

이경훈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중국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이 논문은 조선 후기 노론 낙론 계열의 인물이었던 목산 이기경의 『동유경설』을 서지학적 측면으로 검토하여 『동유경설』의 형식적 특징과 주요 내용을 살피고, 이를 통해 목산 개인의 경학적 사유의 근원을 살펴봄과 동시에, 조선 학자들의 유가 경전에 대한 이해를 검토하는데 목적을 둔다. 우선, 목산의 『동유경설』 집필에 관한 사실은 「목산연보」에 실려 있다. 「목산연 보」에는 “영조25년(1749) 목산 37세에 『동유경설』을 모아 편집하였으나 완성치 못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유경설』은 미완의 저서로 인쇄본과 같은 체계적인 간기사항을 갖추지는 못했다. 다만, 제1책인 『대학』의 첫 페이지에 自序적 성격의 附箋紙가 첨부되어 있다. 여기에는 목산이 『동유경설』을 편집하면서 주로 참고한 자료는 『사계변의』와 『우암문답』이며, 이 두 종의 자료 외에도 ‘조선의 유학자들이 사적으로 토론한 내용들 을 포함하고 있는 문집들에서 유가 경전에 관련된 문답내용을 취합하여 정리하고 자 하였음’을 기록해 두었다. 목산은 유가 경전에 대한 이해와 해석과정에서 발생했던 여타 조선 유학자들의 견해를 취합하여 놓음으로써 경전 해석적 논변의 쟁점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자신 의 경학적 사유를 확립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학 문적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당파나 학맥을 초월하려는 포괄적 수용태도를 견지 하는 듯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동유경설』이 후학들에게 끼칠 암묵적 영향성을 인지하고, 『동유경설』을 통해 학맥을 공고히 유지하며 후학들의 경학 연구의 방향성 을 제시해 주고자 하였다. 이 점에서 『동유경설』은 개인 차원의 경학 연구를 위한 자료임과 동시에, 후학들에게 경학 연구의 과정과 방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자 료 수집본으로써 활용 가능성을 의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목산의 『동유경설』을 검토해 본 결과, 목산이 傾倒해 있던 대표적 東儒에는 晦 齋, 退溪, 栗谷, 沙溪, 尤庵, 市南, 滄溪, 三淵, 農巖, 芝峯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학』과 『중용』연구에 비중을 두어 다량의 자료를 취합하였던 것에 비해, 『논어』와 『시』에 관한 경설 자료 취합에서는 취합 인물과 관련 문집의 종류가 적은 것으로 보아 완성도가 그리 높지 못함을 확인하였다. 이는 『동유경설』의 집필이 미완으로 남았기에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나, 역으로 목산이 경전 해석 에 있어서 『대학』과 『중용』의 가치를 우선시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A Study on the Book of the 『Dongyu Gyeongseol』 by Yi Ki-kyung, Moksan

Lee, Kyounghu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formal features and main contents of the 『Dongyu Gyeongseol(東儒經說) by reviewing the bibliography of Moksan Yi Gi-gyeong, who was a member of the Noron Nakron fami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soon as we look at the source of the individual’s Confucianism reasons in Moksan, also examining the understanding of the Confucianism scriptures of Joseon scholars. The reference to Moksan’s 『Dongyu Gyeongseol is contained in the 「Moksan Yearbook(木山年譜)」. The 「Moksan Yearbook」 records that “『Dongyu Gyeongseol was compiled in 1749 (the year of King Yeongjo’s reign) at the age of 37 in Moksan, but was not completed.” Attached to the unfinished 『Dongyu Gyeongseol』, there is a affix paper. Here, the materials that Moksan mainly referred to during the compilation of 『Dongyu Gyeongseol』 were 『Sagye’s Question & Distinction (沙溪辨疑)』 and 『Wooam’s Question and Answer(尤菴問答)』 and among these two types of materials, “The contents of questions and answers related to the scriptures were collected and arranged in a collection of texts containing private discussions by the Confucian scholars of Joseon Dynasty.” Moksan tried to identify the issues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 by compiling the opinions of other scholars who had occurred during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and interpreting the Confucianism scriptures, and to establish his own reasons for the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situation. On the surface, it seemed to maintain a comprehensive attitude of acceptance to transcend partisan or academic connections to solve academic curiosity, but behind it, it recognized the implicit influence of 『Dongyu Gyeongseol』 on the younger generation, maintained the academic context through 『Dongyu Gyeongseol』 and suggested the direction of the academic studies of the younger scholars. In this regard, the compilation of 『Dongyu Gyeongseol』 was not only used as a material for personal research, but also intended to be utilized as a collection of materials that directly showed the process and methods of the Confucianism scriptures research to junior scholars. After reviewing the 『Dongyu Gyeongseol』 of Moksan, it can be seen that the representative Confucian scholars of Joseon, which were important to Moksan, were limited to Toegye(退溪 李滉)·Yulgok(栗谷 李珥)·Sagye(沙溪 金長生)·Wooam(尤庵 宋時烈)·Samyeon(三淵 金昌翕)·Changgye(滄溪 林泳)·Nongam (農巖 金昌協)·Sinam(市南 俞棨). It was confirmed that the level of completion was not very high in the collection of the data on 『Non-eo(論語)』 and 『Si(詩)』, compared to the large amount of data that focused on the research of 『Dae-Hak(大學)』 and 『Jung-Yong (中庸)』. This may be taken as a natural result because 『Dongyu Gyeongseol』 remained unfinished, but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 Moksan is the result of putting the value of 『Dae-Hak(大學)』 and 『Jung-Yong(中庸)』 more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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